지난 금요일 서초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리 먼 길이 아니기에 지하철을 잠깐 타게 됩니다.
사람이 별로 많은 시간대가 아니어서인지 전동차에 올라타니 빈 좌석이 많았습니다.
연이어 여러개의 빈자리가 있는 곳을 보니 아이스바를 먹은 껍질이 좌석에 버려져 있는데
내용물이 약간 흘러있는 채였습니다.
금새 내려야 하기도 했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판단이 되었습니다.
흘러내린 액체를 어떤 수로 처리할 수가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은 것이지요.
자리도 많으니 상관을 말아도 되겠다고 얼핏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조금 떨어진 좌석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전화기에 눈을 두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난 곧 내리게 되니 저런 건 처리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라는걸
바디랭귀지로 그 주변에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급히 저녁 식사를 마친 때 였으므로 아마도 사랑넷을 들여다 보았겠지요.

그런데 바로 곁에 앉아있던 아주 수수한 남방을 입은 아저씨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액체를 닦고 그 닦은 휴지와 함께 껍질을 좌석 밑으로 넣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껍질까지 해결은 어려웠겠지요.
그런데 그 순간 저는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 곳에 앉아있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을 그 분이 대신 해 주신 것으로 생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에 잡일을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예전 옥목사님 가르치심에 그만 앗차 실수로 인생관을 ‘남이 하기 싫은 일은 내가 한다’라는 걸로
잘못 가지게 되어 고생이 심했다는 말도 자주 해 왔습니다.
그랬던 제가…. 그런 장면을 보면 아무렇지 않게 처리했을 제가…
그만 그런 간단한 상황을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못본 척을 한 것입니다.
아마 다른 때였으면 당연히 그 뒷처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생각을 해 보니 요즘 가방에 넣고 다니는 휴대용 휴지가 별로 흔치 않아서
그걸 주르륵 여러 장을 꺼내어 쓰게 되는게 아까웠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상황은 저를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맞은편의 새초롬하게 생긴 어느 청년이 그 쓰레기를 아저씨 좌석 밑에서 꺼내어
자신의 좌석 아래로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처리를 자신이 내릴 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가 바로 다음 순간 전동차에서 내렸기에 망정이지
오랜 길을 갔으면 다른 칸으로 옮겨 앉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오래전에 초빙 강사로 오셨던 미국의 어느 목사님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검증된 리더쉽’에 대한 말씀이었는데 검증된 리더란
남보다 훌륭하고 대단한 능력을 가져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그대로를
충실히 해 낼 수가 있다면 일곱살의 어린아이도 한집안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요지였습니다.
어린이가 어린이 다운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면 혼탁한 세상 속에서 진실함을 상실한 부모보다는
그 아이가 바로 리더라는 것이지요.
요즘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으며
그래도 뭔가 성경대로 살 것이라고 기대했던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기준에도 훨씬 못미치는
형편없는 삶을 살아갈 때 어떻게 리더의 역할까지를 할 수가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좋은 리더를 목말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는 리더들이
세상에 알려진 만큼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냐구요.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미국에는 ‘Toothpaste Test’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치약을 짤 때 그 안에서 과연 진짜 치약이 나오느냐를 테스트 하는 것이랍니다.
치약인 줄 알고 짰는데 거기서 풀이 나오면 얼마나 실망을 하겠냐고
치약의 겉모양을 하고서 풀을 내놓는다면 그건 사기가 아니겠냐고 말입니다.
실제로 저는 몇년전에 일박으로 수양관에 갔을 때 일회용 치약인줄 알고 가지고 가서
치솔에 짜서 한입 가득 넣었던 것이 비누였을 때 느꼈던 구토감과 배신감이 떠올랐습니다.
왜 하필 그건 꼭 일회용 치약의 모양을 하고 있었냐구요.

그날 서초에 가면서 겪었던 아주 작은 해프닝은 제게 약간의 충격이 되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음에도 제가 생각하고 있던 나와 그걸 실천하지 않는
다른 모습의 자신을 발견했을때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나 자신을 눌렀을때 내가 생각하지 않은 내가 주욱 짜져서 세상에 펼쳐진다면
그건 정말 황당 시츄에이션이 되는 것이지요.
치약을 짰을 때 치약이 나오는게 너무나 당연한데 다른 것이 나온다면
그건 더 이상 치약이 아니겠지요.

요즘엔 알갱이가 들어있는 치약도 있습니다.
행여 내 안의 독소로 들어있던 그 알갱이가 밖으로 같이 딸려 나올 수도 있습니다.
불투명한 흰색과 투명한 푸른색이 줄로 엮여서 나오는 것도 있습니다.
나의 겸손과 교만이 줄줄이 셋트로 엮여져서 나온다면?
또 향이 유독히 강한 치약이 있습니다.
고가의 기능성 치약도, 잇몸을 위한 치약 그리고 미백을 위한 치약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전의 럭키모닝 모닝모닝 럭키모닝 치약 처럼 그냥 순수하고
담백한 그런 치약이 저는 좋습니다.
나 자신을 쭈욱 짜면 합리적인 가격의 순백의 그런 치약이 쭈욱 나와서
어느 누구라도 부담없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런게 저는 좋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드나드는 조카에게 입냄새 제거를 위한 향이 강한 치약을 부탁하기도 하고
선물로 받은 귀한 기능성 치약을 은근히 즐기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일탈의 자신을 알고 있다면 잠시의 외유는 용서를 받겠지요?

어린이라도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한집안의 리더가 될 수 있듯이
우리들이 어리석어도, 남보다 훌륭하고 대단한 능력을 가지지 못해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그대로를 충실히 해낸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데는
그 어떤 자리에서든 리더의 역할까지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자신을 바로 알고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 성실하게 임하는 일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월요일에는 자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먼저 정결하게 하소서.
주님의 보혈로 우리를 날마다 씻겨 주시고 우리 안에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게 하시어
심령이 황폐해 지지않게 하시고 주님의 무릎 앞에 앉아 교훈과 책망을 받아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 각자가 정결한 마음에서 나오는 온유하고 지혜로운 말로 서로를 위로하고 받아들이어
공동체 안에서 화목함이 흐르게 하소서.
상처 받은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시어 평안을 누리게 하시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은사를 더하사 서로를 기쁘게 섬기는 성도가 되게 하소서.

내 속의 모든 이기심과 추한 것들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정결하고 담대해 지기를 원합니다.
나 자신의 정결이 모든 일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늘 생각하게 하소서.
우리의 눈이 주님만을 향하게 하시어
내 마음이 힘들어 아버지의 뜻을 분별치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치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