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우리들 철거민들의 마당기도회 100번째의 날은 저물었습니다.
O 막 O 장의 막이 내린 걸까요?
그리고 새로운 막이 열리는 101번째 기도회를 하루 앞둔 오늘입니다

또한 오늘은 합심기도 40일 중 40일째를 마무리 하는 날입니다.
마무리가 시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데 늘 하던 가족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려 합니다.

제가 2009년 여름에 썼던 글을 한편 찾아내었습니다.
남편의 실질적인 은퇴와 큰아들의 취업
그리고 작은 아들이 미국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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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누리는 복이 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다.
현대인의 오복으로는 건강, 배우자, 재물, 일, 벗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기도 한다.

나는 나름대로 남자복과 먹는 복이 있다고 농담삼아 이야기 하곤한다.
우선 아들 둘이 있으니 남편과 세남자를 앞에 거느리고 외출을 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먹는 복이야 내 몸이 증거하고있으니 달리 설명이 필요할까.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 나의 복들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면 항상 결론은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한가지 충고로 압축이 되고
남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예전보다 막중한 인생의 책임감이 커져가기도 한다.

말도 별로 없고 칼같은 성격이던 남편은 어느새 자잘한 영감님이 되어가고 있고
큰아들은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게 되어 새로운 인생을 어찌 꾸려가게 될지 걱정도 된다.
작은 아들은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제 힘에 부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니
아직 내 마음에는 아기같은 아이를 재차 멀리 보내려는 마음이 아릿하다.

먹을 복이 많다고는 하지만 비싼 과일을 사먹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손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비싼 복숭아를 주려면
나는 뒤로 돌아 앉아서 후다닥 복숭아를 깎은 후, 작은 접시에 일인분씩을 나누어서 주곤 했다.
아니면 깎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포크가 쳐들어와서 접시가 깨질 위험에 처하고
씹지도 않고 꿀떡 넘기고 다시 포크를 들이미는 상황도 벌어지기 일쑤였다.
나는 한입도 먹어보지 못한 채 씨에 붙은 붙은 부분만 도려먹는 것은 물론이고.

여름 방학을 맞아서 실로 오랜만에 작은 아들이 미국에서 다니러 오자
복숭아를 한 상자 사왔는데 이번에는 저마다 바쁜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한남자씩 깎아주게 되기가 십상인데 그때마다 복숭아 상자 앞에서 고민을 한다.
열몇개 되지도 않는 복숭아를 앞에 놓고 마음속에 저울질을 한다.

‘아이구, 우리 영감 이젠 돈벌이도 별로 없는데 아직도 아들 비싼 학비 대노라
속으로 얼마나 고심을 할까, 제일 맛있는걸로 골라야지.’

회사에서 일을 맡아서 파견을 나갈때면 두어달동안 조간 신문을 들고 귀가하는 날이 허다한
큰아들의 피곤해 하는 얼굴을 떠올리고
입이 깔깔하다구 아침으로 복숭아 하나만 깎아달라고 할때 한참을 고른다.

아직도 어린양이 가득한 장난꾸러기 막내가 앞으로도 또 여러 해를 힘든 공부를 해야 한다는데
공부가 적성에 별로 맞지도 않는 녀석이 고생을 할 생각을 하면 내 눈앞이 아득하다.
거기는 복숭아는 맛있는게 있지도 않은데.

이제는 나의 힘에 부쳐서 세 남자에게 각각의 불만을 가지고 툴툴거렸건만
갑자기 마음이 약해지면서 복숭아 상자 앞에서 변덕을 부린다.

매일매일 저녁밥을 집에 들어와서 먹고 때론 점심도 싸가는 삼식이 남편,
얼른 결혼이나 해서 색시와 알콩달콩 살지 삼년 뒤에나 결혼을 하겠다는 큰아들,
다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일이 부담스럽던 작은 아들.
각자의 인생에 책임을 지고 세상 속에서 힘들게 노력해야 하는
나의 세 남자들을 복숭아를 두고도 가늠하는 나의 가슴은 아리다.

하나님, 저 세 남자들의 인생을 축복해 주소서.
저의 부족한 노력으로는, 저의 변덕스러운 사랑으로는 저들을 세상 속에서 지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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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3_오늘의기도1

–갈 길을 찾아 가는 아들들

그러던 나의 세남자는 이제 그 당시의 한고비를 넘었습니다.
은퇴 후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하던 남편은 야무지게 마나님을 모시고
상하이에 짧은 중국어 언어연수를 다녀왔고
큰아들은 결혼을 하자 어느새 이쁜 딸을 낳고 둘째인 아들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한단락의 공부를 마치고 취업을 하고는 ㅇ 교회를 섬기게 되자
갑자기 마치 전업 목회자와 같이 바쁜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당시에는 아마득했던 앞날도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느결에 새식구로 난데없이 여인 둘이 생겼습니다.
손녀는 지난 크리스마스에 유아세례를 받았고 며느리는 5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젠 남자복도 희석이 되었나 봅니다
남자셋, 여자셋이네요. 울 손녀 버전으로 또까또까입니다.

그 며느리를 맞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매년 새학기가 되면 권사회에서 기도 제목을 나누게 되는데 2007년 4월이었습니다.
큰 아들의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대한 기도가 먼저였을텐데 갑자기 배우자에 관한 기도가 생각이 나면서
언듯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씩 적어나갔습니다.
열가지로 마무리가 되고 나자 즐거운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우리 가정이 밝고 환한 분위기의 며느리를 맞은 것 같은 기대감을.
다락방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니 그런 아가씨가 요즘 세상에 대체 어디 있겠냐고 식구들이 웃었지만
저는 당신들 모두가 어떤 면으로는 그런 사람이 아니냐고 되물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몇 가지만 골라서 맺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성령 충만하면 모든 열매를 아우를 수 있지 않겠냐구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장 22절)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삶을 살고자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노력하면
누구나 성령의 모든 열매들을 주렁주렁 탐스럽게 가지게 될 것이 아니겠냐구요
그건 진지한 신앙생활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물론 아들의 배우자 감이 현재는 그 기도제목 속의 열가지의 모습들을 모두 갖추고 있지 못하더라도
아들과 가정을 이루고 토닥토닥 거리면서 인생을 구비구비 엮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멋진 현숙한 여인이 되어 있을 그런 며느리감을 기대해 본다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들 부부의 어우러짐이 미리 기도했던 열 가지를 훨씬 넘어선
상상치도 못했던 훨씬 더 많은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게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

어제 100회 기도회에 둘째를 뱃속에 담고 왔던 우리 며느리는 당시의 그 기도제목에
하나도 빠짐이 없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한 아이입니다.
그 기도제목이 궁금하시다구요? 아주 단순합니다.
*아들에게 현숙한 배우자를 주세요*
(순종하는 믿음, 온화한 성품, 따스한 마음, 평안한 가정환경, 긍정적인 사고,
음식 잘하고, 어른 공경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가진,
단아한 외모, 아들에게 사랑 받는)

 

140613_오늘의기도2
— 우리들의 앞날에도 녹색의 평안과 앞날에 대한 부푼기대만이 함께 하기를….

불과 5년 전의 우리 가족들의 미완의 모습은 이미 찾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길을 열심히 가다보니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역시나 미래를 바라보면
미완의 모습입니다.
세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기도했던 것보다,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들의 교회도 그리 될 것으로 믿습니다.
비록 현재는 미완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오늘 박장로님은 척박한 마당을 찾아 주시어 가슴을 울리는 찬양과 더불어
깊고도 박장대소를 하는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그 한사람의 인생길에서 만난 놀라운 하나님을 우리도 잠시 만났습니다.
‘내안에 하나님을 향한 눈물이 있습니까?’물으시는 질문에 그동안 메말랐던
저의 심령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손에 이곳의 성도들 모두를 올려드립니다’ 라는 말씀에
크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자신은 이곳에 있는 단 한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이 그곳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한사람을 위해 오늘도 자신도 모르는 미지의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그 한사람이 나 자신이기를 우리 모두가 소원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 한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면 좋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홀로 ‘임재’를 듣습니다.
하루를 마치는 12시였습니다.
어제가 저무는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새날이 밝는 시간입니다.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곳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당기도회에 임재 해 주신 하나님.
그곳에서 드리던 꺼지지 않는 주를 향한 노래를 하늘 문을 열고 들으셨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들의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기를 소원합니다.
이곳에는 오직 주님의 이름만이 남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그 어느 날, 주님께 드리는 우리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주님의 임재를 더 깊이 경험하게 하소서.
우리 안에 아직도 녹아지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기도의 향기로 날려 주소서.

http://tvpot.daum.net/v/ve4d8W5C8LYrb00rWhC1hkv

오늘 조간이 문앞에 던져지는 소리가 납니다.
새날의 시작입니다.
우리들 마당기도회의 새장을 여는 시간입니다.
마음속의 짐을 다 주님께 드리고 새 마음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기쁜 소식이 가득한 날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향하여 가고 있는 바로 세워질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교회와 예배의 본질이 회복 될 그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한분씩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바라며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지난 40일 동안 저의 부족한 글을 통하여 공감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어느날 문득 또 글로 만나뵐 것을 기대하면서 이만 물러갑니다.
우리들의 꿈은 계속됩니다.
온마음을 다하여 에배드릴때에 오직 주님 이름만이 남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