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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기사 내용 중 

 
이에 시사저널은 사랑의교회 측에 오 목사와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교회 신축비용 및 특혜, 재정 유용, 논문 표절, 학력 위조 등 그동안 제기돼온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오 목사로부터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9월15일 오후 서초동 교회 사무실에서 오 목사를 만났다. 인터뷰는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오 목사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솔직하게 이날 1시간 30분가량  단독 인터뷰를 한 기사를 여러 번 읽고 검토하면서 든 필자의 생각은 시사 주간지 기자로서 인터뷰를 했다기 보다 사랑의교회 소식지인 우리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분명하게 인터뷰를 요청해서 한 인터뷰라면 최소한 독자에게 새로운 쟁점과 기자가 발굴한 뉴스가 있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살아 있는 기사라면 오정현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이 요구하고 묻고 싶은 질문에 대한 사전 고찰이나 준비를 한 기사라 보기에는 몇 가지 의혹이 가는 점이 있다.

단독 인터뷰라며 거창하게 밝힌 기사 내용은 이미 교회 소식지나 교회에서 운영한다고 의심받는 인터넷 사랑의교회 우호 기사를 쓰는 사꾸라 인터넷 신문에서 늘 나온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시사저널 이름만 빼고 우리지 이름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은 논조라는 점이다.

기자는 오정현을 만나기 전에 MBC PD수첩은 보고 갔는지 그리고 필자가 미국 취재를 통해 강도사 인허 의혹 및 목사안수 과정과 오정현 자서전에 나오는 허위사실 등을 사전에 알고 단독 인터뷰를 했는지 매우 의심스러운 대목이라는 점이다.

솔직하게 이 기사는 해명이 아니라 의혹 증폭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 이유는 9월 15일 전 오정현 목사의 학력 의혹이 신성남 집사나 강만원 형제의 페이스북에서 한 참 문제를 제기한 때였고 필자의 추측이지만 오정현 지지세력에서나 교회에서는 해명 해야 할 시기였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사저널이 오정현을 찾아 인터뷰 했다면 필자의 블로그에서 시작한 학력 조작 의혹이 발단된 현재 의혹 이슈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접근해야 옳았다.

최소한 기자라면 왜 사랑의교회는 각종 의혹 제기를 한 PD수첩에서 나온 내용을 안 상태라면 또 억대 소송에서 사랑의교회가 1차 패소를 했다면 패소한 쟁점을 새롭게 구성하여 접근해야 옳았다.

오정현 입장에서 패소한 쟁정에 대하여 무엇이 억울할지 등 말이다. 그런데 이 기사 내용은 2년 반 전 여러 옹호 발언한 언론기사를 짜깁기한 것처럼 새로운 접근 없이 오정현의 되풀이 되는 변명을 담았다는 점이 시사저널의 격을 떨어뜨리는 언론 관계자라면 이 기사를 쓰레기 기사라 취급하는 원인이라 본다.

날카롭고 새로운 접근이 없는 질문과 기사 구성 거기다가 허위 사실로 보는 교회 내분의 원인을 교회 건축 반대에서 시작되었다는 터무니없는 허위 주장이 바로 사랑의교회 오정현의 관점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시사저널 기자라면 이런 질문을 듣고 해명이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썼을 것이다.

1. 왜 숭실대 편입을 1978년 2월에 했는지 또 그동안 1977년 관동대 입학은 왜 숨겨 왔는지?

2. 편입공고도 없다는 의혹 제기에 명쾌한 해명을 부탁하고 그리 쉽게 숭실대는 78년 사학과 편입과 영문과 전과를 허락했는지?

3. 왜 편입되자마자 방위입영을 했으며 입영 날짜 1978년 2월인데 편입이 같은 해 3월이 가능한지 또 방위해제가 1979년 3월 30일이고 해제 후 내수동 교회 주보에 의하면 부산에서 4월 중순까지 시간을 보낸 문구들이 있는데 학기 중 수업을 듣지 않고 편입할 수 있는지?

4. 왜 전과한 숭실대 영문과 당시 졸업생은 오정현을 기억 못 하고 졸업앨범 조차에서도 이름과 사진을 볼 수 없는지 돈 안 낸 학우들도 앨범에 사진과 이름이 있다는 제보가 있는데 이 점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5. 내수동 교회 당시 학생들은 오정현 목사의 학교를 경희대 재학 중으로 알던 이들도 많은데 학교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6. 자서전 ‘열정의 비전메이커’에 오정현 목사의 허위 학력 사실이 기재된 점에 대해서 명확한 해명을 부탁하는 것과 왜 2001년 두 곳의 일반 신문에서 경희대 졸업과 총신대 졸업으로 보도되었는지?

7. 부산고는 칼빈신학교 학적자료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증언자가 증언하고 있는데 왜 그런 증언자가 나오는지?

8. 관동대학교에서 편입했다면 관동대학교 학적자료에는 1학년 수료 후 편입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왜 2학년 재학 중 재적으로 나오는지?

9.1982년 3월 1일 결혼 후 미국으로 도미한 것으로 내수동 교회 후배들도 증언하는데 왜 총신대 재학 중 도미라고 각종 약력에서 소개된 점에 대해서 왜 해명을 못 하는지?

10. 1981년 봄학기를 미주 총신 신대원에서 수학했다는 증언자가 존재하는데 사실인지?

11. 미국 하버드 청강과정을 마치 박사후과정이라고 허위로 기재한 이유는 무엇이며 2002년 9.11 하버드 대학 추모행사에 참석한 것처럼 허위로 기재한 이유는 무엇인지?  청강 기간 또한 7개월이라 자서전에 기록되었는데 사실 영수증이나 남가주 사랑의교회 당시 주보에 의하면 2주간으로 나오는데 왜 거짓으로 기록했는지?

12. 2002년 총신 편목과정을 수업도 듣지 않고 출석과 학점이 나와 과정 수료를 한 점에 대해서 양심에 가책이 없는지?

13. 미국 교단 헌법을 위반하면서 까지 목사 안수를 받은 이유와 허위 강도사 인허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14. 첫 목회를 한 빅터빌 한인교회로 간 시점이 빅터빌 한인교회 약력에도 1985년 11월에도 나오고 당시 청빙한 성도들도 똑같이 증언하는데 오정현 목사는 1976년 2월 이후 부임했다는 허위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15. 왜 2013년 가을 교회 주보와 함께 나눠지 간지에 목사 안수증에 씰 없는 안수증을 공개했는지? 확인결과 동기들 안수증에는 안수 번호가 찍힌 씰이 존재한다는데 혹시 2013년 공개한 씰 없는 안수증을 객관적인 조사기관에 의뢰해 종이 연대 검사를 할 의사는 있는지?  또 당시 서기 목사인 김성만 서기가 아닌 부서기인 정희주 목사를 서기로 표기한 이유는 무엇인지?

16. 총신대 동기 기수 모임은 졸업기수로 모이는데 1982년 입학한 후 1학기 수업을 받았다고 본인은 주장하지만 기억하는 동기생도 없고 도미한 시점을 기억하는 증언과 불일치 함에도 1985년 총신대 신대원 졸업생인 78기 동기 모임에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78기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너무 질문이 많지만 대략 이렇게 16가지 질문만 해도 충분히 새롭고 불필요한 의혹을 해결하여 내분을 잠재울 수 있는 충분히 건강하고 휼륭한 기사를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사저널은 동네 마을 신문만큼도 못한 진부한 인터뷰 기사로 현재 욕을 먹고 있다.

 

2015년 9월 26일

황성연 형제 올림

 

가져온 곳 : 블로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글쓴이 : 황성연|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