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벌써 9년이 되어 간다. 정직과 감사운동 출범예배를 드린지가….그런데 정감운동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 교회의 목사님이 최근에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는 정직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은 내용이어서 충격스럽다.

정직하지 않은 답변이 여럿 있지만 그 중, 사정을 모르는 분들은 그대로 지나칠 수 있는, 그래서 더욱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몇가지를 짚어보려 한다.

그 목사는 박사 학위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200페이지 가운데 인용 사실이 빠진 게 2페이지 정도 된다. 표절이라면 표절일 수 있지만 20년 전에 쓴 논문이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졸업증명서의 허위 기재에 대해, “학교 관계자가 ‘학창 시절을 어디서 보냈느냐’고 질문한 데 대해 ‘B시에서 보냈다’고 답변한 게 기재된 것” 이라는 등의 답변은, 평생을 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친 사람으로서 진위를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 펜(?)을 든다.

첫째,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읽은 분들은 여러가지 정황을 미루어 볼 때 대필자의 표절일 것으로 추측하였으나, 대필자가 자백을 하지 않는 한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더라도, 표절임은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글을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 책이나 논문의 제목, 출판연도, 출판사와 인용한 페이지를 밝혀야 하는 것은 글쓰는 사람의 기본원칙이며 윤리인데, 문제의 그 논문은 여러 저자의 연구를 짜깁기 수준으로 복사하면서 중간중간에 연결문만 자신이 쓴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2 페이지라니? 어이가 없다.

그 논문을 꼼꼼히 읽어보거나 조사한 사람이 국내에만 최소한 10명은 넘을 터인데(외국의 학자들과 그 논문을 읽었을 국내외 학생들은 제외함)….어찌 그리 정직하지 않은 변명을 하는지…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지…성도들에게, 세상사람들에게, 후배 신학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지….절규를 담아 묻고 싶다. 만일 인용표시 없는 부분이 2 페이지 정도였다면 ‘정에 약한 한국인’,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강한 한국적 정서’, ‘학연, 인연, 지연, 교연 (교회인연)등의 인연으로 얽히고 설킨 한국 사회’에서 아마도 크게 문제 삼을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나머지 190여 페이지는 직접 썼음을 높이 평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그게 아니었다. 질과 양의 면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악스럽고 충격스러울 정도의 표절 사실을 발견했을 때 밀려드는 그 절망과 분노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둘째, 20년 전에 쓴 논문이라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한 태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형사법 위반에는 공소시효라는 것이 있지만 표절이라는 사실에는 시효가 없는 법이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에 시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리가 표절을 이유로 형사처벌을 원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20년 전의 표절이라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표절을 했는가의 사실 여부가 문제인 것이다. 양심과 도덕과 윤리의 문제인 것이다.

표절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글을 인용했다는 표시 없이 (각주나 후주 등에서) 자신의 창작인양 함부로 쓰는 것을 표절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타인의 연구나 창작을 훔치는 것에 다름 아니니 절도인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저작물에 대한 보호와 아울러 표절을 처벌해 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외국과 마찬가지로 보호와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에서 인용 사실을 밝히면 표절이 아닐 것인가? 아무리 인용 표시를 했다 하더라도 1 단락 (paragragh)을 넘으면 그 역시 표절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학계의 관례이다(그렇게 지도하는 학교도 있다). 타인의 글을 인용할 때에도 제한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분의 박사학위 논문은 인용 표시도 없이 여러 페이지를 자신의 연구인양, 창작인양, 함부로 썼으니 절도나 다름없는 파렴치한 행위인 것이다.

참고로, 몇 년 전에 문제되었던 독일의 법무장관은 30년 전에 받은 박사학위논문에 표절 부분있음이 발견되어 법무부장관직을 사임한 일이 있는데… 그가 인용표시를 하지 않은 것은 2 페이지는 커넝 1 페이지에도 미치지 않는, 극히 부분적인 표절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변명 없이 그 자리를 사임하였다.

셋째,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졸업증명서에 졸업한 고등학교를 허위로 기재했다는 질문에 대해, 그는 “학교 관계자가 ‘학창 시절을 어디서 보냈느냐’고 질문한 데 대해 ‘B시에서 보냈다’고 답변한 게 (그 지역 이름을 딴 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기재된 것”이라고 했다는 답변은 인쇄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어이가 없다. 세상 사람들을 바보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아예 우롱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해명이다. 평생을 교직에 종사했던 한사람으로써 그 변명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알려야 할 의무감에서 이 글을 쓴다.

학생 선발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그 거짓됨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선, 학생들이 학교에 지원서를 제출하면 직원들은 그 서류의 진실성 여부를 일일이 검토하지 않고, 아니 검토할 시간이 없다, 전공별로 철해서 해당 단과대학이나 대학원(여기선 대학원)에 보낸다. 대학원에서는 정해진 날에 교수들이 지원자를 면접하는데, 면접 시에는 학교 직원이 철해준 두툼한 서류를 참고하며 지원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교수들은 학생의 능력이나 자질 및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는 질문을 던진 후 답변하는 내용과 자세를 판단하여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는 곧 학생의 입학여부를 결정짓는 자리이니만큼, 학생 못지 않게 긴장하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어디서 학창생활을 했느냐”는 등의 하찮은(?) 질문을 할 수 있는가? 이미 학생 스스로 작성해서 학교에 제출한 서류에 다 기재되어 있는데…? 더욱이 혼자 면접하는 것도 아니고 여럿이 같이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학창생활을 어디서 했는가?”라는 등의 쓸데 없는(?) 질문을 할 시간은 없는 것이다.

설사 누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 해도, “B시에서 보냈다”는 학생의 답변을 듣곤 이미 학생이 제출한 서류를 고쳐쓸 수 있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선 면접을 하는 교수는 그런 행정적인 일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그건 직원들의 영역이고 교수의 임무는 연구와 강의하는 일인 것이다.

학교 직원도 마찬가지이다. 지원자인 학생에게 어느 도시에서 학창생활을 했는지를 묻고 답변에 따라 서류를 직접 작성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이미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했으므로…그런 절차는 불필요한 것이다. 학생이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그 학생은 면접의 자리까지 올 수 없을 뿐이다.

학교는 학생들이 제출한 서류를 일단 믿어 준다. 그리고 나중에 그 기재가 허위임이 발견되면 당연히 소급해서 합격을 취소한다. 학교 당국이 여러 가지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허위기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직원들이, 대학 아니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어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느 시에서 학창생활을 했는가…하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진 후 그 답변에 따라 서류를 작성할 필요가 있는가? 학생들이 작성하여 제출하면 되는데….? 학교가 그만큼 한가롭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어찌 이렇듯 거짓될 수 있을까, 절규하며 이 글을 쓴다. 자신의 거짓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충 넘어가려는 불성실함에 분노하며 이 글을 쓴다. 소위 정감운동하는 교회의 목사가,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거짓으로 점철된 인터뷰를 보며, 한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정감운동 제안자중 한 사람으로서(교회가 정감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평신도 운동임. 자세히는 나중에 밝힐 것) 부끄러운 심정으로 이 글을 맺는다.

 

*가져온 곳 : 카페 >사랑의교회 회복을 위한 기도와 소통 네트워크(사랑넷)|글쓴이 : 이화숙| 원글보기

* 정감(정직과 감사)운동 오정현목사 초대의 글 : http://it365.sarang.org/sub01/sub01.asp

* 오정현목사 시사저널 인터뷰 기사 :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7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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