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Namjung_1

17.11.18

오늘 첫 번째 바람빛교인으로 소천하신 김집사님의 3일 장례를 마쳤다. 그동안 성도들의 부모님 장례들은 있었다. 그러나 바람빛 성도의 장례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분은 사실 바람빛교회를 한번도 와 보신 적이 없으신 분이시다. 남편되시는 A집사님이 투병하는 아내를 사랑의교회 이름으로는 절대로 보낼 수 없다시며 우리 교회로 이명해 오셨는데 결국 교회에 한번도 참여하시 못하셨다.

바람빛교회를 수 개월 전부터 나오신 남편 A집사님은 매주일 예배가 끝나면 식사도 못하시고 황급히 아내인 김집사님을 챙기러 교회를 나가셨다. 아내가 암 투병 중인데 항암으로 힘들어 하신다고만 하셨다. 몇 번의 청을 드려서 병세도 깊고 또 아무에게도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던 아내 집사님의 동의를 얻어 병원을 찾았다. 병석에서 반갑게 맞이 해주셨고 그렇게 몇 번의 만남 뒤에 목요일 새벽에 잠자듯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떨리는 목소리의 남편 집사님을 통해 듣게 되었다.

감사했다.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는 집사님을 위해 바람빛교회 성도들은 제 가족의 일처럼 아니 가족으로서 모든 장례예배에 참여하여 위로와 격려를 보내며 손 발로 섬겨주었고 마지막 안장하는 과정까지 마음모아 도와주셨다. 모든 율법이 이웃을 사랑하는 섬김에서 이루어진다는 바람빛공동체 고백이 삶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이었다.

따뜻했다.
초겨울의 날카로운 바람이 체감기온을 더욱 낮게 떨어뜨리는 입시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들이었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도 바람빛성도들은 장례식장을 찾아와 긴 시간을 같이 머물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천국환송예배와 안식예배가 있는 오늘 새벽부터 끝까지 동행해주시며 남편 집사님과 유족들을 위로해 주셨다.

가슴아팠다.
병실에서 처음 만난 김집사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신 분이셨고 또 무척 젊으셨다. 오랜 투병으로 말라버린 몸 때문에 더 크게 보여진 두 손을 꼭 잡았다. 김집사님은 나의 손을 잡고 ‘미안해요, 목사님. 더 좋은 얼굴로 교회를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가 교만했어요.’라고 하셨다. 나의 무릎을 톡톡 치시며 ‘남편 A집사를 잘 인도해달라’고 몇 번을 부탁하셨다. 교회에서 다같이 손잡고 예배하자고 약속했는데 결국 한번도 예배에 오지 못하셨다.

분노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써야만 겨우 다스릴 수 있는 깊은 통증. 그 가운데서도 목사의 손을 잡고 옛날 교회에서의 추억을 나누셨다. 이야기를 이어가다 진통제 때문에 때로는 잠시 정신이 흐릿해지는 상황에서 과거 사랑의교회에서 받으신 치유하기 힘든 깊은 상처를 볼 수 있었다. 공동의회에서 담임목사의 표절과 건축의 부당함을 지적했다는 이유로 바로 다음날 부목사를 통해 순장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일들. 교회가 없어 수년간 이리 저리 떠돌던 아픔들. 마침내 마지막 숨을 세어야 하는 침상에서 몇 년만에 만난 목사라는 인간의 손을 잡고서 쏟아 놓고 가셔야 했던 상처들. 이 이야기는 김집사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같다.

내일은 추수감사주일이다. 사랑의교회는 수십명의 갱신성도들의 재판회를 개최한다고 공고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불의를 포장하기 위해 그간 수많은 성도들의 영혼에 상처를 남기고 있는 자들은 반드시 그 죄값을 치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