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해서는 쉽지 않다는 제자훈련에 몰입하다 보면, 지친 육체의 피로와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힘들다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제자훈련 사역에 집중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그에 못지않는 행복감에 젖게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것은 바로 한 영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예수 비전으로 꿈을 키우며 열정적으로 사역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제자훈련의 개척자 옥한흠 목사로부터 제자훈련이 가져다준 행복으로는 어떤 것이 있었으며, 목회자가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그 비결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날 짜 | 2008년 10월 8일
장 소 | 국제제자훈련원 사역센터
진 행 | 송태근 목사(강남교회)
정 리 | 우은진 편집장(월간 <디사이플>)

081008_대담1

국내외 수많은 동역자들을 보며 행복에 젖는다 

송태근 목사 _ 오랜만에 건강하신 옥한흠 목사님의 모습을 보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 목사님으로부터 제자훈련으로 인해 지도자가 느끼는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듣고자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지난 30년간 사역하시고, 사랑의교회를 담임하면서 제자훈련의 알찬 열매를 맛보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목회 현장에서 발로 뛸 때와 지금 일선에서 물러나서 바라볼 때 감회가 다를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저를 비롯해서 많은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훈련 목회철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창 제자훈련에 몰입해서 목회할 때는 솔직히 격전의 현장이다 보니 행복감을 제대로 느낄 사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목사님처럼 치열한 목회 현장에서 한발 물러서서 볼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옥한흠 목사 _ 필드에서 뛰던 운동선수가 은퇴 후 스타디움에 앉아서 자신이 과거에 뛰던 팀을 응원하는 감정은 필드에서나 관중석에서나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애정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응원하면서 자신이 몸담았던 팀이 승리를 하면 정말 신이 나겠지요. 저 역시 제자훈련을 통해 성도들이 기쁨을 느끼고, 교회가 건강하게 서가는 모습을 보면 즐겁습니다. 감정이 진하고 덜 진하고는 있을 수 있겠으나, 목회 일선에 눈코 뜰 새 없이 사역하던 때나 은퇴한 지금이나 그 마음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지난 30년간 사역에서 사랑의교회 현장 하나만을 집중해서 봤다면, 은퇴 후인 지금은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동일하게 갖고 있는 국내외의 수많은 동역자들을 지켜보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 영혼을 예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불철주야 땀과 눈물을 흘리며 그로 인해 기쁨을 느끼는 모습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면서 저의 행복은 더 커지고 깊어집니다.

송태근 목사 _ 지난 30년간 제자훈련 사역을 하시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고와 노력이 지금의 사랑의교회를 만들고, 한국 교회에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알리는 데 밑바탕이 되어 수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은퇴하신 지 이제 5년이 되셨는데,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옥한흠 목사 _ 건강은 나 자신이 관리를 못해서 다친 것입니다. 최근 암 수술 후 2년 반 동안 정기검진 받은 것 외에는 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고 있습니다. 큰 수술을 한 데다 나이가 70세가 넘으니 무리한 일은 예전처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무엇을 하든지 적당히 하고 껄껄 웃고 마는 스타일이 아니라, 설교 한 번 준비에도 애를 먹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본래 가지고 있던 성격이 바뀌지 않다 보니, 힘이 빠지는데도 옛날 버릇이 그대로 남아서 설교하는 자체보다 준비하는 데 기진맥진하게 되고 그러다 힘들어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습성이 바뀌면 스스로 자유할 수 있고 건강도 더 잘 챙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책을 보려고 애를 씁니다. 제자훈련의 국내외 확산을 위한 사역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느려 보일 수도 있지만, 빠른 걸음으로 걷기보다 주님이 앞서서 걷도록 하시는 만큼 나아가고 있습니다.

081008_대담2제자훈련 인도자의 순수성이 중요하다

송태근 목사 _ 목사님의 그런 정신과 헌신적인 노력이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제자훈련을 목회본질로 인식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제자훈련을 해본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가 적당히 대충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훈련 교재를 적당히 준비하고, 훈련생들을 대충 인도해서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고, 교회 체질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만큼 제자훈련은 목회자의 출혈과 헌신적인 대가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출혈의 크기만큼 목회자가 느끼는 행복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되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옥한흠 목사 _ 솔직히 제대로 제자훈련을 하는 사람은 출혈이 큽니다. 그러나 출혈이 많고, 대가를 많이 지불한 사람만이 아는 행복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자훈련을 인도하는 목회자에게는 ‘순수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순수하지 못하면 훈련생이 은혜를 받아도, 교회가 건강하게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만 제자훈련이 가져다주는 외적인 열매들만 보고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목회자는 순수성이 떨어집니다. 제자훈련을 진짜로 하는 사람은 훈련의 외적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행복해하고 뿌듯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직 우리 주님이 하신 이 일을 내가 따라 걷는다는 사명감 하나만으로도 행복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목회자가 제자훈련을 통해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순수할까요?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세우는 제자훈련을 하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사람입니다. 한두 명 앉혀놓고 훈련해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디사이플> 10월호 현장이야기에 소개된 여수 광명교회 서영곤 목사의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1년째 제자훈련 사역을 했지만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현재 제자훈련을 마친 수료생은 단 35명뿐이라고 합니다. 제자훈련을 마쳐놓으면 떠나는데도 불구하고, 서영곤 목사는 아직도 제자훈련을 행복해하며 지속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한 사람을 예수의 온전한 제자로 세워서 각자의 사명대로 사는 것을 보는 자체만으로도 목회의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많은 사례나 좋은 차, 큰 예배당 건물이 없어도 한 사람을 제자 삼는 사역에 보람을 느끼며 계속하는 것입니다. 목회의 한계가 있지만 현실을 바라보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하고 맺게 될 아름다운 열매들에 그의 목회생명을 겁니다. 이렇게 목회본질에 있어 순수성을 지닌 목회자가 한국 교회에는 많아져야 합니다.

송태근 목사 _ 목회자로서 한 사람을 변화시켜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제자훈련을 잘 못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 교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회자로서 부름 받은 소명에서 궤도 이탈한 변질된 제자훈련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옥한흠 목사 _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면서 가치관의 변화가 목회에 굉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많은 희생과 눈물보다 상업적 논리가 목회에도 흘러들어와 손쉽고 빠르게 교회를 부흥시키는 방법에만 모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열망이 그런 분위기에 맞는 프로그램을 낳고, 그런 현상을 당연시하는 안타까운 실정이 반복됩니다. 높은 수준의 훈련강도가 빠진, 단순히 이름만 제자훈련이라고 붙인 프로그램은 성경공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한 영혼을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에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 1:28~29)라고 했습니다. 목회자의 자기 부인과 희생 없는 열매는 그 결과가 씁쓸할 뿐입니다.

송태근 목사 _ 많은 한국 교회 목회자들이 한 영혼을 예수의 제자로 세우기보다 교회 성장과 용도에 맞는 일꾼을 만드는 데 제자훈련을 변질해 이용하려 합니다. 그런 목회자들은 제자훈련의 진정한 행복도 모르면서, 열매만 보고 제자훈련의 손익을 따지며 불평합니다. 그래서 현재 한국 교회가 대내외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것 같습니다. 제자훈련이 궤도 이탈을 하니, 한 영혼에 대한 비전 즉, 한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 _ 제 눈에는 요즘 신학교를 졸업한 30대 목회자들의 앞날이 눈앞에 뻔하게 그려집니다. 신학교를 통해 배출된 교역자 수는 수요공급이 이미 무너진 상태이며, 우후죽순 세워진 교회는 출혈경쟁이 심합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 한 사람의 가치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목회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빠른 교회 성장과 부흥에만 관심을 갖는 목회자들이 늘어납니다. 그러니 그들의 앞날이 뻔하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희망은 모두가 다 가라지 같아도 그중에서 진짜배기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CAL세미나에 많은 목회자들이 다녀가지만 모두가 한 사람의 가치를 붙들고 씨름하는 일을 지속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한 영혼의 가치에 땀 흘리는 행복한 목회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미련한 사람 백 명보다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그런 식으로 일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가치 발견하며 모든 것을 걸다

송태근 목사 _ 목회자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 제자훈련의 궤도 이탈을 하게 됩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이는 필연적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제자훈련 목회를 하시면서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대명제를 놓고 볼 때 짜릿한 순간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그때가 언제였는지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옥한흠 목사 _ 첫 제자훈련을 하면서 느낀 흥분과 행복의 강도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짜는 성도교회 대학생 1기 제자훈련을 할 때였습니다. 그때 제자 6~7명이 지금도 매년 ‘스승의 날’이면 한결같이 찾아옵니다. 당시 그들과 함께한 제자훈련을 통해 은혜와 보람을 처음으로 맛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자훈련을 받는 10명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제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아내와 자식까지도 말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고 예수를 위해 꿈을 키워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성도교회 대학생 제자훈련이 제자훈련의 첫사랑을 맛보게 했다면, 사랑의교회 1기 남자 제자반 역시 훈련생 한 사람마다 부어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순간순간 포착하고 체험하게 했습니다. 그 훈련생들은 모두 자유주의 신학, 모태신앙 등 각자 신앙과 삶에 문제가 한둘씩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세상적으로 볼 때 모두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라 무명의 개척 교회 젊은 목회자의 이야기에 감동받고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훈련 후 4, 5개월 후 깨어져서 변화와 은혜의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180도 다른 말을 하고, 못된 버릇들이 바뀌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제자훈련을 수료한 후 모두 다락방을 개척했습니다. 특별히 부인만 나오고, 남편은 안 나오는 가정을 접촉해 다락방에 나오도록 했습니다. 그들이 제자훈련을 통해 변화 받고, 제자훈련의 파워를 못 느꼈다면 그 사람들에게 전화하지도 못하고, 순장으로 섬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사랑의교회가 터를 닦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년 후 9명 모두 1기 장로로 세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체험들로 제자훈련이 주님이 원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임을 깨닫게 됐고, 제 자신이나 훈련받은 평신도들에게 기쁘게 헌신할 수 있는 소명감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누가 돈 주고 가르쳐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정과 그 변화의 열매를 보면서 느끼는 행복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마치 하나님께서 흔들어서 바구니 가득 채워주시는 듯한 행복을 지난 30년간, 그리고 지금도 맛보고 있습니다. 제게 제자훈련 받은 집사 중 고등학교 동창생이 한 명 있는데, 그 친구 말이 20년 전쯤 한번은 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옥 목사, 이대로 계속 제자훈련만 할거야? 다른 교회는 부흥회다 새벽기도회다 열심히 해서 3년 지나니 50명이 모이던 교회가 400명까지 모인다던데…”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때 제가 “나는 이 길로 계속 걸어 갈 거야”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송태근 목사 _ 결국 목사님께서는 평신도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세우는 제자훈련 사역에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으셨다는 말입니까?

옥한흠 목사 _ 저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습니다. 저의 확실한 목회철학은 평신도의 자존심을 세우고, 기쁘게 사역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목회자의 동역자로서 목회자 못지않게 기쁘게 사역하도록 하는 게 저의 사명입니다. 평신도의 존재 자체가 목회자와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하나님께서 옥 목사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마 3:17)고 말씀하신 것을 그들에게도 하고 계심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평신도들은 시키지도 않는 일까지도 열정을 갖고 뛰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라는 열등감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최근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이재명 집사도 5년간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밤낮으로 죽기 전까지 전도하다가 갔습니다. 400명이나 전도했는데, 그것은 누가 시켜서 월급 준다 해서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바로 제자훈련의 열매요, 기쁨으로 충만해서 스스로 한 일입니다. 이런 평신도들을 볼 때마다 평신도 한 영혼을 제자훈련 함으로써 얻는 행복이 크기 때문에 이 사역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본질이 회복되면 목회자의 기쁨은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송태근 목사 _ 오늘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을 다시 읽다가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루터는 성경을 평신도들에게 돌려줬고, 제자훈련은 사역을 평신도들에게 돌려줬다”입니다. 평신도들에게 전문사역자로서의 이 본질이 회복되는 것이 제자훈련의 가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목회자들은 스스로가 불필요한 권위를 교회 안에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옥한흠 목사 _ 그것은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병폐 중 하나입니다. 신학적인 근거도 자기 나름대로 받아들여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이며 평신도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여기면서, 교인들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며 영적 폭력을 휘두르는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교인들이 똑똑한 것 같아도 목회자들이 ‘당신 목회자를 대적하면 하나님의 벌을 면치 못한다’라고 엄포를 놓으면 대학교수도 떨게 됩니다. 평신도들이 영적 리더십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도록 목회자들은 해방선언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평신도가 자기 주체의식을 갖도록 하는 제자훈련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송태근 목사 _ 평신도를 깨우는 일도 필요하지만, 성직자들도 해야 하는 훈련이 제자훈련인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의식구조 속에도 종교적 틀에 갇혀 ‘에헴’거리며 권위의 횡포를 부리는, 성경에서 벗어난 지위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제자훈련은 정말 그 누구보다도 목회자에게 필요합니다.

옥한흠 목사 _ 평신도를 깨우려면 목회자부터 깨야 합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단지 직분의 권위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직분에는 순종해야 하지만, 신분의 차이로 평신도들을 억압하는 목회자의 자세는 제자훈련을 방해합니다. 그런 권위주의에 익숙한 목회자일수록 목회가 쉽습니다. 그들은 한 영혼을 살리려는 노력보다는 교회 성장과 부흥에만 목표를 둔 쉬운 목회에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주님 앞에서 판단 받을 문제입니다.

제자훈련을 교회 성장의 수단으로 여기지 말라

송태근 목사 _ 목사님께서는 제자훈련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성장하면서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많은 사역에 지치실 때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육체의 피로를 영적으로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옥한흠 목사 _ 저 역시 연약한 인간인지라 사역하면서 육체적으로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교회가 적정한 사이즈에서 속도를 내면 덜할 텐데, 폭발적으로 성장하니 병이 나서 부교역자들에게 모든 사역을 넘기게 됐습니다. 한 주에 사역훈련 3개반, 남자·여자 순장반 등 총 5개반을 인도했는데, 육체적으로 도망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는 기도조차도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폭발적인 교회성장과 함께 저의 사역에 과부화가 걸려서 육체적으로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연 법칙을 어기고 있으니 기도도 안 나왔던 것입니다. 속도를 늦추며 조정했으면 건강을 해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은 소명감으로 불타고, 변화하는 평신도들의 열매를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니 기쁨에 겨워 무리를 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설교할 때보다도 평신도들과 함께 제자훈련 할 때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롬 1:12)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평신도들과 함께 제자훈련 할 당시가 그립습니다.

송태근 목사 _ 사랑의교회가 오늘날과 같이 급속도로 성장을 한 것은 제자훈련의 결과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그 외 다른 요인이 있다고 보십니까?

옥한흠 목사 _ 제자훈련이 사랑의교회 성장의 키포인트라는 말은 틀린 말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제자훈련에만 올인하면 그런 성장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 같은 훈련을 거부하는 성향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단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라고 강하게 몰아붙이면 그런 교회는 사람들이 즐겁게 찾아오기 어려운 분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양적 성장은 다양한 요인들이 상호작용을 해서 나타나는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성장만을 가지고 목회가 성공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판단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확신하는 것은, 사랑의교회 성장에 제자훈련이 끼친 영향은 절대로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변화된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양질의 체질로 바뀌고, 그 결과 교회는 자연스럽게 성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건강한 토양과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게하는 설교와 강남이라는 교통요충지 등이 함께 작용해서 급속한 성장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제자훈련을 교회 성장의 유일한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시작한다면 결코 교회 성장도, 목회의 행복도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송태근 목사 _ 개인적으로 1994년 귀국 후, 목사님께 인사를 드릴 때 제게 두 마디를 하셨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첫째는 주보에 글자 하나 바꾸지 말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무지막지하게 기도하고 설교에 생명을 걸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전통 교회에서 제자훈련의 영향력이 나타나려면 강단에서부터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총신대 신대원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학생들이 설교 모델로 옥한흠 목사님을 꼽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설교 텍스트 본문에 충실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설교자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설교하는 진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제자훈련과 설교의 관계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셨으면 합니다.

옥한흠 목사 _ 제자훈련의 문화는 한방으로 치면 보약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체질이 강건해져서 병을 덜 앓게 되고,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그런 역할을 제자훈련이 하는 것입니다. 반면, 강단 설교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직접 그때그때 먹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제자훈련을 잘 시켜도 성도들이 배고픔을 느끼면 피해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제자훈련 못지않게 설교 준비를 할 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설교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제자훈련만 잘한다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설교만 잘한다고 교회가 부흥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두 사역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꼭 갖춰야 할 사역이며, 철저한 준비와 기도로 이뤄져야 할 부분입니다.

081008_대담3열악한 환경에서 본질 붙든 사례들을 보며 배운다 

송태근 목사 _ 행복한 목회를 이미 해본 경험자로서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기쁘고 즐겁게 사역할 수 있는지 비결이나 지침을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옥한흠 목사 _ 목회 일선에서 은퇴 후 개인적으로 월간 <디사이플>을 통해 건강하고도 행복하게 목회를 하고 있는 교회 사례들을 접하며 한 수 배우고 있습니다. <디사이플>에 소개되는 교회 사례들은 백에 한 개 정도로 뽑힌 사례들이기 때문에 그 사역 이야기에 저 자신도 굉장히 도전 받게 되고, 간접적으로나마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여건이 좋고 열매가 좋은 교회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매를 하나씩 거두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내가 가서 배워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디사이플>에 소개되는 교회 사례들을 유심히 보고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상황마다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은사에 따라 행복한 목회, 성공적인 목회의 이상은 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회본질을 놓지 않고, 주님이 명하신 사역에 순종하는 순수성을 견지하려는 몸부림이 사역자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미리 가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갈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송태근 목사 _ CAL세미나에서 옥한흠 목사님의 ‘광인론’ 강의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광인(狂人)이라는 말은 미친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제자훈련 목회의 행복론과 광인(狂人)의 연관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옥한흠 목사 _ 솔직히 정신적으로 미친 사람은 행복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치다’라는 말은 자기가 행복을 강하게 느끼지 못하면 될 수가 없습니다. 남모르는 기쁨이 광인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광인들이 이제 한국 교회는 물론 이민 교회에도 많아졌습니다. 브라질의 경우, 고영규 목사가 시무하는 아과비바교회에서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CAL세미나가 아과비바교회의 섬김과 제자반 현장 오픈과 함께 두 번이나 이뤄졌습니다. 중국의 경우, 지하 교회의 선교사들을 통해 제자훈련 사역이 만만치 않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5년간 사랑의교회에서 지원했지만 목회자들이 고령화되어 제자훈련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어 고민입니다. 그러나 센다이교회 후지모토 목사의 경우는 제자훈련 정신에다가 사무라이 정신까지 합쳐져 겁이 날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경우, 최광규 선교사가 15년간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제자훈련을 하고 있으며, 제2세대들이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볼 때 어느 나라든 제자훈련의 원리는 똑같습니다. 예수님 사역의 뒤를 이어받아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한다는 것을 목회자가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목회 환경 등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한 영혼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데 마음의 기쁨이 가득 차게 됩니다. 그들의 변화를 함께 나누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고, 그들을 통해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열매를 보며 또한 행복해합니다. 이런 제자훈련 사역에 감격을 느낀 이들이 있는 곳에는 세계 어느 곳이든지 행복이 넘쳐 날 것입니다. 저 역시 세계 곳곳에서 제자훈련의 기쁨을 느끼는 이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다른 행복에 젖습니다.

제자훈련의 재생산 범위 넓히는 작업 필요하다

송태근 목사 _ 목회를 하든지 비즈니스를 하든지 그가 지닌 철학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철학이 분명한가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제자훈련도 국제제자훈련원을 통해 이 부분이 강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제자훈련은 이제 재생산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경제논리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남은 한 영혼까지 재생산이 이뤄져야 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만들어야 합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재생산하는 교회가 앞으로는 전도에 더 강조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옥한흠 목사 _ 현재 제자훈련을 제대로 하는 교회에서는 재생산과 양적 성장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재생산이 꼭 전도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자훈련을 받은 사람이 부부생활, 자녀 양육, 직장생활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무형의 재생산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생산의 범위를 다양하게 넓히고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물론 재생산까지 전도의 열매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역상으로 목회적 한계를 가진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여수 광명교회는 지방도시 근교라는 상황 때문에 인구 이동이 심해 제자훈련을 시켜 놓아도 떠나버립니다. 이처럼 힘든 상황일지라도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라는 말이 있듯이 소수의 교인들을 정성껏 훈련시키면 어떤 모양으로든 재생산이 가능하다고 확신했습니다.

송태근 목사 _ 교회나 신학교의 출혈 경쟁이 심한 시점에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목회자로서 순수성을 지키고, 한 영혼을 제자 삼는 사역에 집중하여 행복한 목회를 경험해 보라는 말씀은 오늘날 힘겹게 사역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후배 목회자들에게 귀한 말씀 전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디사이플/ 2008. 11.1